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는 전략을 가진 회사에 마음이 갑니다. 전반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회사의 포괄적인 계획은 처음 들었을 때의 그럴듯함과 달리 투자 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되려 당장 수요가 있는 문제를 정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있는 힘껏 달리는 회사와 원대한 목표를 가졌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작은 계획과 세부사항의 완벽함을 기하는 회사에 가치를 느낍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은 정형화된 성과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한 번도 사업의 전체라는 막을 내려본적이 없는 회사들에 과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 - 고객이 원하는 것을 우선하는가

‘신발계의 애플’ 추앙 받던… 친환경 ‘올버즈’의 몰락
신발계의 애플 추앙 받던 친환경 올버즈의 몰락 주가 96% 폭락에 감원까지

지난 몇 년간 VC들은 앞으로의 원대한 계획을 그럴듯하게 잘 설명하는 회사에 점수를 줬습니다. 누가 더 큰 꿈을 가지고 있는지가 투자의 이유가 됐고, 더 큰 시장을 타겟하고 있다면 더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마치 스타트업은 일반적인 회사의 분류에서 벗어나 "세상의 문제를 풀겠다"는 숭고한 미션을 가진 조직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정의해 조직의 결속을 다지고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 탄생한 내부의 개념이지만 한정된 근거 속에서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VC로선 놓칠 수 없는 정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가지고 있는 꿈으로 하여금 고객을 설득하도록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구매자는 회사가 풀고자 하는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단지 지불하는 대가만큼 좋은 가치를 얻을 수 있을지를 따질 뿐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로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업의 시작은 팔리는 제품에서 기인하며 회사가 가진 좋은 의도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의미를 갖습니다. 타당한 명분이 아니라 굴러가는 사업을 가진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완벽보다는 실행?🙅‍♂️ - 완벽함에 집착하는가

정말 완벽주의자는 창업을 하면 안될까?

빠른 실행력 하나로 모든 단점을 극복해야 하는 스타트업에는 완벽주의자 성향의 경영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IR 발표 때의 감동과 달리 완벽함보다는 엉성함에 가까운 제품을 회사가 내놓는다면, 분명 어딘가에 모종의 이유로 이렇게 모자란 제품도 구매하길 원하는 고객이 있을거라 현실을 부정하곤 합니다.

구매자의 입장에서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받아볼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회사가 무언가를 시장에 내놓았다면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완벽해야 합니다. 완벽주의자가 창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오해는 완수에 그쳐도 되는 일과 완벽해야할 일을 단순히 구분함으로써 해소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시장의 크기를 추정하여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가늠합니다. 하지만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외부 요인이 아닌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 단위를 완벽하게 만들어 고객에게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라 생각합니다. 완성도가 담보된 제품은 그 자체로 복제 가능성을 갖고, 다른 제품과 연계한 부가가치 창출 또한 훨씬 매끄럽습니다. 어려운 프레임워크를 도입할 것도 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확장이란 기본적으로는 제품과 서비스의 복사, 붙여넣기입니다.

계획은 계획일뿐?🙅‍♂️ - 치밀하게 준비하고 이루어내는가

요즘 주식 시장의 최대 화두인 에코프로 계열사들. 저는 관련한 주식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양극소재가 100원이면 국내 양극소재업체가 25-30원만 컨트롤 가능한 부분이에요. 나머지 70-75원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갖고 오는 거에요.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꼴입니다.
4년 전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가 직원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 생태계를 만들자, 최소한 부가가치를 한국의 척박한 이 광산도 없는 자원에서 60-70%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 지금은 아무리 많이 팔아본들 6-7%다.
이걸 2배 이상으로 만들어보자."

그게 포항의 우리 에코프로 캠퍼스입니다.

거기에 그 밑단계 전구체, 니켈, 리튬, 그 단지 내에 유틸리티 산소와 질소를 공급하는 AP 공장까지. 일련의 생산 공장을 패키지화 하자. 이걸 제가 4년 전에 제안해서 포항에 오게 된 겁니다.

(2021년 5월 에코프로 이동채 회장의 경북도청 강연 중. 출처 = 에코프로 유튜브, 네이버 블로그 "펭미업")

코스닥 상장사인 에코프로비엠은 배터리 양극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양극재사업은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한편, 전방 시장의 가격 압박과 원자재 값의 높은 변동성으로 좋은 수익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우려가 공존하는 영역입니다.

에코프로는 낮은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꽤 큰 단위의 장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양극재 제조의 후방 산업을 내재화하여 조달 원가를 낮추고, 생산 부산물을 재활용하여 원재의 활용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계열사 사업을 구상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계획을 실제로 추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주요 계열사를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두고 있는 에코프로의 영업이익률이 상당히 개선된 것을 볼 때 오래 전부터 추진해온 계획이 철저히 이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치밀하게 사업 계획을 세우고 성실히 이행해내는 것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회사의 규모와 관계 없이 미래는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불확실합니다. 그저 남들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꿋꿋이 실행해나가는 회사가 있을 뿐입니다.

마음이 편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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