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시장이 얼어 붙었던 2022년 하반기,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VC를 만들겠다 뛰쳐나왔습니다. 때가 아니다 만류하던 선배 심사역들의 조언을 용감히 무찌르고, 먼저 준비 중이셨던 동료분들의 오피스로 짐을 옮겼습니다. 무척이나 힘든 길이 될 것은 예상했습니다. 먼 곳으로 한달 간의 긴 휴가도 떠났습니다. 하지만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너무나도 정확했는지, 결국 우리는 시작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도전의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회사의 명함을 내려놓고 이름 석자와 맨 주먹으로 시장에 나서보니 그제서야 이 산업의 역학이 또렷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원하는 투자를 하고 싶어 나왔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투자를 할 수 있을지는 한가한 고민처럼 느껴졌습니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 지금, 우리가 부족했던 건 무엇이고 스스로가 내린 선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업계에 새로 진입한 심사역들은 다양한 이유로 퇴사와 이직을 고민합니다. 그 중에는 본인의 투자 성과를 온전히 누리고 싶다는 의지로 VC 창업을 꿈꾸는 야심가들도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에 답을 내리고 빠르게 실행하여 (실패라는) 결론에 이르러본 사람으로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야기를 전합니다.

실망스런 성과 보수의 원인은 업의 본질에 있다

누군가 큰 성과급을 받아갔다는 소식은 심사역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합니다. (출처 = 매일경제)

처음 업계에 들어오면 상당히 들뜬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미디어에서나 접했던 스타트업의 대표들을 매일 만날 수 있고, 다채로운 영역의 역동적인 변화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심사역이라는 직업은 과연 더 재미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을만큼 매력적입니다.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좋은 회사를 발굴해 두둑한 성과보수를 챙겨갈 수 있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일반적인 월급쟁이와 구분하는 자부심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펀드의 규약과 회사의 정관을 뜯어보고나면 많은 심사역들의 생각이 바뀝니다. 개인이 얻어갈 수 있는 성과 보수 비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개별 투자 건의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펀드 전체의 성과가 좋지 못하면 인센티브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심사역들이 수익 배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알지 못한채 업계에 진입하고, 실체를 이해하고나선 이직을 고민하는 경우도 꽤나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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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펀드의 청산 성과는 출자자와 회사가 7:3 비율로 분배합니다. 회사가 수취한 성과는 다시 회사와 기여자가 일정 비율로 나눠 갖고, 회사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50% 이하의 비율을 기여자의 몫으로 배분합니다.

투자로 큰 수익을 가져다줬는데 왜 내 인센티브는 쥐꼬리만할까?

정답은 내 돈으로 투자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투자자라도 투자의 과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자기 자본으로 투자를 해야하고, 우리가 투자하는 돈은 내가 아닌 다른 주인이 있습니다. 큰 돈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마치 스스로 돈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땐 반대 입장에서 본인이 펀드에 가입할 때 자산운용사에 떼줘야 하는 수수료와 성공 보수가 얼마나 불합리하게 느껴졌는지를 되새긴다면 현실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심사역 개인이 돈을 벌어가기 쉽지 않은 이유는 펀드 비즈니스라는 업의 본질에 있습니다. 고객의 돈을 신의에 좇아 성실하게 운용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와 투자 성과의 일부를 수취해가는 것이 VC를 비롯한 운용 사업의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허상을 좇으며 위험한 베팅에 몰두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VC 창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VC가 펀드 비즈니스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투자로 큰 성과를 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아니라는 깨닫게 됩니다. 펀드의 운용사는 출자자를 유치해 펀드를 만들고 수수료를 수취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경영 목표입니다. 만일 투자 성과가 좋지 않더라도 모종의 이유로 돈을 맡겨주는 출자처가 있다면 아이러니하지만 매우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직접 VC를 차리고 경영을 하게 된다면 투자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펀드를 유치하기 위한 설득 수단 내지는 회사의 수익을 제고해줄 수 있는 부가적인 기회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심사역 개인의 입장에서는 몇몇 투자 건에 성공해 성과의 일부를 가능한 빨리 얻어갈 방법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보니 미회수 투자 잔액에 대한 손실 대비금을 충당해야 하는 의무나 여러 명목으로 성과 보수를 떼어가는 경영진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운용의 주체가 본인의 회사가 되는 순간 개별 투자의 성공 여부보다는 지속가능한 사업 구조, 다시 말해 펀드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다른 사업들처럼 VC 창업으로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다만 성공의 여부는 얼마나 큰 투자 성과를 만드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신속하게 펀드를 만들고 안정 궤도에 진입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VC를 창업한다면 하게 될 것들

창업을 한 순간 VC도 다른 스타트업과 다를 것 없이 생존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내 주머니로 얼마의 돈이 들어올지 계산하는 것은 너무나도 한가한 고민이라 만일 그런 여유가 생긴다면 이미 절반 쯤 성공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매달 지출되는 인건비 외 고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매출을 만들어야 합니다. 짧아도 회수하는데 1-2년이 소요되는 벤처 투자의 특성상 투자 수익을 매출 계획에 반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결국 회사가 굴러가기 위한 수익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다음의 옵션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1. 블라인드 펀드 - 가장 이상적인 수익원

대부분의 신생 VC는 전주로부터 자본금 또는 일정 규모의 펀드 출자를 확약 받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규 설립된 회사는 법인격으로선 어떤 출자자와도 신뢰 관계를 만들어본 이력이 없어 새로운 출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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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상 창투사의 설립 자본금은 20억원, 신기사의 설립 자본금은 100억원입니다. 독립계 VC의 경우 창투사 최소 자본금 요건인 20억원을 맞춰 설립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운영 시 펀드의 GP 의무 출자비율(1%)를 고려했을 때 상당히 빠듯한 규모입니다. (의무 비율만큼만 출자해서는 아무리 성과가 좋더라도 의미 있는 투자 과실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주가 펀드 결성금의 전부를 출자 확약해주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결국 나머지 출자금을 조달해올 수 있는지가 생존 과제로 남습니다. 심사역 개인의 투자 이력을 판매하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등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펀드를 만들어 와야 합니다.

경험 상 3명의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0억원 규모의 펀드 결성이 필요합니다. 평균 관리보수율을 고려했을 때 매년 3-4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투자 실적이 있고 출자자와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운용사와 Co-GP 펀드를 결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리 보수를 분배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수익은 더욱 작아집니다.

수익 구조를 갖추기 전까지 자본을 잠식해가며 고정비를 충당할 체력이 있는 회사도 꽤나 많습니다. 다만 어떠한 경우던 적절한 시기에 펀드를 결성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사업을 영위하기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 프로젝트 펀드 - 빠르게 실적, 수익을 만들기 위한 자구책

프로젝트 펀드는 단일 건 투자로 리스크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출처 = 이코노미스트)

프로젝트 펀드는 단일 투자 건을 위한 펀드로서 신생 VC가 빠르게 펀드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특히 상장이 가시권에 들어온 Pre-IPO 회사를 발굴해 투자한다면 짧게는 1년만에도 펀드 회수 성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생사들은 프로젝트 펀드를 사업의 초석으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건의 프로젝트 펀드를 연속으로 성공시킨다면 투자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 받을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규모가 큰 블라인드 펀드에도 도전해볼 수도 있습니다. GP 출자금액을 늘려감으로써 수익 면에서도 더 많은 분의 투자 과실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 투자 건마다 자금 유치를 해야하는 프로젝트 펀드의 업무량과 난이도는 블라인드 펀드로 투자할 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30억원 이하의 비교적 소형 프로젝트 펀드는 금융 기관의 출자를 받기는 어려워 개인 또는 일반 법인을 상대해야 하는데, 자금 모집은 물론 사후관리의 난이도 또한 예측이 불가합니다.

3. 자기자본 투자 - 생존을 위한 눈물의 베팅

VC 또한 자기자본으로 여러가지 투자를 하고 단기적인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고려되는 투자 방법은 공모주 청약과 상장주식 트레이딩입니다. 시장이 활황이었던 당시 자기자본 투자로 짭짤한 재미를 봤던 VC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이 얼어 붙으며 이전과 같은 리스크 대비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VC 창업 전 갖춰야 하는 능력

초기 팀은 모두가 일당백 할 수 있는 어벤저스여야 합니다. 스스로 충분한 실력을 갖췄었는지를 반성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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