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저희 펀드가 결성된 후 어느덧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전 2편의 글을 통해 각 필진이 어떤 전략으로 회사를 선정하였는지 설명드렸는데 이제 제 차례가 됐습니다. 왜 이렇게 제 차례는 빨리 돌아오는 걸까요?

일단 자신있게 저희들의 펀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운용하고 있는 펀드의 수익률이 꽤나 좋기 때문입니다. 펀드 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0월 17일 이후 KOSPI 대비 1.99%p 아웃퍼폼하였고 향후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회사들을 편입하였기 때문에 이런 성과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전 글에서 어느 정도 설명은 했지만 스타트업 투자 블로그를 표방하는 동상이몽회관에서 왜 상장 주식 얘기를 하게 됐을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VC 심사역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통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상장 회사나 비상장 회사나 기업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건 다 똑같은 거 아니냐? 굳이 상장 시장을 따로 공부까지 해야 하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두 시장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미팅 다니고 보고서 쓰고 사람도 만나야 하는 VC 심사역들은 참 바쁜 사람들입니다. 스타트업만 봐도 힘든데 상장사까지 봐야 한다고요? 그런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썼습니다.

상장 주식과 비상장 주식의 차이

  1.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상장 주식이 비상장 주식과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이 투자자의 편이라는 것입니다. 상장 주식은 회사의 펀더멘탈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서 아무 이유 없이 50% 넘게 빠질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회사의 주가가 펀더멘털 대비 과대 평가되었다고 생각되면 주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기다리다가 주가가 더 날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그 주식은 그냥 놓아주면 되죠. 그 주식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2,648개의 투자처가 남아있습니다.

출처 :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 시스템

하지만 비상장 주식 투자 대부분의 경우 시간은 투자자의 편이 아닙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Seed 투자를 받고 Series A, B, C 단계를 거치면서 가치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투자 단계를 거치면서 가치가 상승하는 Up Round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우리는 투자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됩니다.

혹여나 투자 가치가 이전 단계에 비해 하락하는 Down Round가 진행되어 밸류가 낮아졌다면 회사 가치의 심각한 훼손이 있다는 증거이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비상장 투자를 하면서 주로 기업 가치가 오르는 것만 경험하게 되면 상장 주식 투자에서 엄청난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삼성전자 사놓고 기다리면 되는 거 아냐?). 회사의 가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연히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 번 더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기업가치 측정의 주체

비상장 기업의 가치는 소수의 심사역들에 의해서 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생각과 괴리가 발생하게 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소수의 투자사들이 가치평가를 하면서 퍼블릭 마켓에서의 가치와 동떨어진 밸류에이션을 부여하면 상장은 커녕 그 이전에 다음 단계 투자를 이어갈 투자사를 못 찾을 가능성이 큽니다.

VC 심사역들은 항상 상장되어 있는 Peer Group에 대한 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 비상장 회사의 밸류에이션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갈 곳은 상장 시장이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문제는 상장사 대비하여 스타트업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하면서 발생합니다.

우리가 투자할 회사는 엄청난 혁신을 일으킬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식이 된 상장사들보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장사들 역시 그러한 시기를 거쳐 지금의 단계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한 때는 스타트업으로 시작을 했었구요.

[스페셜리포트]역대 최다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기준·성장 기반 마련은 숙제
우리나라에서 기업가치 1조원을 돌파해 유니콘 기업 등극 이력이 있거나 현재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는 기업 수는 총 35개다. 쿠팡, 우아한형제들, 하이브, 에이프로젠 등 8개 기업은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

이런 점 외에도 저는 상식적인 투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괴짜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떠올린 적 없는 아이디어를 통해 특정 회사에 투자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가치가 굉장히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주가는 언제쯤 상승할까요?

바로 대중의 선택을 받은 시점입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던 세상을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이해하게 됐을 때 이 회사의 주가가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주식은 천재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시선과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2010년 중반만 하더라도 제가 다니던 회사의 종목 회의 시간에는 내연기관차의 뒤를 잇는 차가 수소차일까 전기차일까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사람이 전기차가 자동차 업계의 미래라고 말하겠지만요. 저 당시에는 전기차 관련주들의 주가 흐름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기차 그게 되겠냐라는 비판이 거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소차 대신 전기차를 선택하면서 전기차 회사들의 실적이 성장하고 주가 흐름이 좋았던 것을 보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런 버핏과 PDR의 짬뽕

저는 어린 시절부터 따박따박 돈을 버는 회사가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아버지 사업 성과에 따라 소고기를 먹을 때도 있었고 김치만 먹으면서 살았던 적도 꽤 길게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현금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회사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국내 상장사 중 이런 속성을 가진 회사들은 많은 부분 제조업(특히 소부장)에 몰려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VC 투자에서나 상장 주식에서나 소부장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나 제 돈이 아닌 출자자의 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의 입장에서 그들의 돈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더 보수적으로 변하게 된 것 같습니다.

출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익금을 배분한다는 것은 투자한 주식을 적절하게 Exit함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VC 업계의 주요 Exit 창구는 IPO입니다.

출처 : 한국벤처캐피탈협회

IPO가 44.4%로 회수 방법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매각이 투자사 사이의 거래라고 생각하면 대부분이 IPO를 통해서 Exit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투자처를 고려할 때 IPO가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을 비중있게 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로봇/AI 회사들이 많이 상장했지만 여전히 IPO에 성공하는 많은 회사들은 소부장 회사들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나 회사 펀드에서나 소부장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생기게 됐습니다. 그 계기는 바로 재미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식 투자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투자가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을 보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소부장 투자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생각을 많이 안 했던 것 같습니다. 밸류체인 전체를 쭉 놓고 그 안에서 개선이 필요한 공정이 있다고 할 때 그 공정에 들어갈 소재, 부품, 장비를 만드는 회사를 찾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특출난 통찰력도 상상력도 필요가 없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흥미가 사그라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봇/배터리/AI/항공우주 등의 특정 산업을 확정적인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미래라고 보는 산업에 투자를 하는 것에 제 상상력과 통찰력은 얼마나 쓰일까요?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제가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의 제한이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워런 버핏이 말했던 Circle of competence가 넓히는 것이 향후 제 투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미래를 그려보고 그런 미래를 만들어가는 회사에 투자를 하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지 않나요?

Warren Buffett - How To Know Your Circle Of Competence - YouTube
출처 : 구글 이미지

저는 사람들 모두가 꿈꾸는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회사에 투자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그 상상력을 숫자로 숫자로 산출하는 것은 무척 어렵겠지만요.

/자료=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출처 :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깐 이전에 한국투자증권에서 발행했던 보고서에 나온 PDR이라는 개념이 떠오르네요. 기존의 밸류에이션 방법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회사들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개념인데 제가 말씀드린 상상력에 기반한 투자와 비슷한 결의 방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워런 버핏의 투자 방법론에 대한 글을 많이 쓰면서 그와 배치되는 전략을 소개해 드린 것 같은데 여기서 제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미래에 대한 꿈이 있으면서 동시에 이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시간을 벌어줄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많은 상장사를 보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창업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지치고 사업에 대한 열정도 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업력이 오래 되었음에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달려나가는 회사에 베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꿈과 돈을 동시에 가진 회사가 있나요?

제가 저희 펀드에 처음으로 편입한 회사가 딱 이 조건을 만족합니다.

출처 : 회사,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

D사는 일반의약품, 전문의약품을 개발 및 제조하는 전통 제약사입니다. 회사는 거의 매년일반의약품 블록버스터 탄생시키며 꾸준하게 성장하며 이를 통해 창출한 현금으로 지금은 헬스케어 사업으로 진출했습니다.

회사는 1960년대에 설립되어 업력이 5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신제품을 출시하고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창업자가 깔아놓은 회사의 성장 DNA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신사업에 진출할 경우에 기존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현금이 그대로 신사업으로 흘러가 회사에 남는 게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회사는 꼬박꼬박 현금을 창출하면서 새로운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서 특별한 이슈가 없는 이상 아마 쭉 함께 할 것 같습니다.

여의도에서 일한 지 6년이 지나면서 이 곳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져 어느 순간 관성적으로 생각하고 투자하게 된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다양한 사고의 틀을 배우고 시도해 보고 실패하고 교훈을 얻으면서 더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을 읽고 다른 의견이 있으면 꼭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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