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한다면 어느때보다 고민이 많을 시기입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 탓인지 우리의 매수 버튼도 얼어 좀처럼 눌릴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잠든 야수의 심장을 억지로 부추겨 떨어지는 칼날을 잡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꼼짝 말고 가만히 움츠러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스스로가 해왔던 플레이를 복기해보고 반성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참 좋은 시기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은 제가 몸담고 있는 벤처캐피탈(VC)에서의 투자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 보았습니다.
VC는 무엇인가?
VC는 개념적으로 보자면 Private equity fund를 운용하는 회사입니다. 펀드는 자산을 전문으로 운용하는 회사에 내 돈을 맡겨 그들이 주식이나 채권 같은 Asset에 투자해 돈을 벌어오도록 하는 상품이죠. 다시 말해 회사가 다수로부터 돈을 모아 일정 수준의 운용 자산을 조성하고 그 돈으로 무언가에 투자를 하게 된다면 이것이 펀드가 됩니다.
해외주식펀드, 배당주펀드, 인덱스펀드 등등 펀드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중 Private equity fund는 증권거래소에 Public하게 공개되어 있지 않은 비상장 회사의 주식(Private equity)을 투자하여 수익을 만드는 펀드이죠. 그리고 잠재력 있는 벤처회사의 주식이 바로 저희와 같은 VC가 투자하는 Private equity입니다.
현직자도 헷갈리는 PEF의 개념👇
실무에서 VC가 PEF를 운용한다 이야기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VC의 펀드가 비상장 회사에 투자한다는 의미에서 개념적으로 Private equity fund가 맞긴 하나, PEF는 VC가 운용하는 대부분의 펀드와 법상 성격이 다른 경우가 많고 의미 또한 다르니까요.
한국에서 PEF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2021년 자본시장법 사모펀드 규제가 개정되기 전, 사모펀드는 운용 목적에 따라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로 구분되었습니다.
이 중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회사의 지배적인 지분을 취득하여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기업 가치를 올려 되파는 Buyout 성격의 펀드를 말하는데, 이러한 운용 형태만을 특정하여 PEF라고 불렀었습니다. 개념적인 의미의 Private equity fund와는 차이가 있죠.
현재 법상 사모펀드는 운용 목적에 따른 차이가 없어지고, 투자자 범위에 따라 제도가 개편돼 기관전용 사모펀드와 일반 사모펀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라는 의미의 PEF는 사라졌으나, 업계에서는 Buyout 형태의 투자를 주된 운용 전략으로 하는 PE firm의 펀드를 일컬어 PEF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 : 국내 사모펀드 제도의 역사)
VC 투자는 가치투자일까요?
주식 투자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가치투자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치투자는 워렌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에 의해 만들어진 투자 개념입니다. 그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에는 투자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죠.
“투자란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원금의 안정성과 적당한 수익성이
보장되는 행위를 말한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내린 투자의 정의를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투자 = 가치투자
투자원금의 안정성 = Low risk
적당한 수익성 = Medium return
결국 (가치)투자는 Low risk로 Medium return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해석이 가능합니다. (VIP자산운용 최준철 대표님 강의)
가치투자의 개념은 워렌 버핏을 위시로 한 위대한 투자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특히 워렌 버핏은 성장성 높은 기업을 발굴하고 장기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는 High quality 투자의 개념을 만들었죠. 다만 투자에 대한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전제는 여전히 그대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전통적인 가치투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VC 투자는 검증되지 않은 제품과 사업모델을 가진 초기 회사에 베팅하는 엄청난 High risk, high return 투자인 것이죠.
저는 아직도 VC 투자가 가치투자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VC 투자의 Risk
1. Stop Loss가 불가능하다.
VC가 투자하는 비상장 회사의 주식은 손절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합니다. 거래소에서 사고팔수 있는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VC는 가지고 있는 주식을 팔기 위해 항상 매수자(기관투자자, 고액자산가)를 찾아야 합니다.
회사의 상황이 악화되어 주식을 처분하고 싶더라도, 뻔히 망해가는 회사의 주식을 사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 만들어지는 벤처회사 10곳 중 7곳은 5년 안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고 하는데요.
잘못된 투자 판단을 내릴 경우 일부 손해에 그치지 않고 원금 전체를 잃게 되는 게임인 것입니다.
2. 수익 실현도 어렵다.
회사가 잘 되더라도 당장 주식을 팔아 수익을 실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또한 주식을 사줄 매수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인데, 여러가지 이유로 VC들은 다른 VC로부터 주식을 사오는 것을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령 이미 발행된 주식(구주)을 매수할 경우 회사가 직접 발행하는 주식(신주)을 배정 받는 경우보다 경영진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불리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존 투자사가 주식을 매도하고 싶어하는데는 자신들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 지레짐작하는 경우도 있구요.
기업 간 M&A 조차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국내 시장에서, VC들이 IPO 외 뾰족한 회수 전략을 세우기란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3. 가치 산정이 어렵다.
기업의 가치는 자산가치+수익가치입니다. 회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 가치와 향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의 합이죠.
전통적인 가치투자는 합리적인 가정을 전제로 내재가치를 계산하고 내재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을 때 투자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벤처회사가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돈을 벌어들인 과거의 이력이 없으니 미래에 얼마의 돈을 벌지 예상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 어려운 일이죠.
우승 확률을 따질 근거
여러가지 Risk를 중에서도 제게 VC 투자가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인 방식에서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숙된 회사는 오랜 기간 만들어온 인적, 사업적 체계을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과거를 통해 예측한 미래의 추정 성과가 설득력을 갖습니다. 반대로 벤처 기업은 체계나 기반이랄 것이 없으니 가치 측정을 위한 정교한 모델링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시장 기회나 인력의 퀄리티 같은 정성적인 요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죠.
Price와 Value 간의 Mismatch를 판단하기에 앞서, 합리적인 Valuation 조차 어렵다는 문제는 의사 결정에 있어 상당한 불편함을 줍니다. 대안이 없는 많은 투자자들은 Value보다 Price에 집중하게 되고, "A 회사가 얼마이니 B 회사는 얼마쯤 될 거야" 또는 "지난 Round에 이 가격이었으니 지금은 얼마쯤 될 거야" 처럼 감에 의지한 판단을 내립니다. 섹터 전체가 Overshooting 했다가 동시에 Downside에 접어들거나, 비상장 회사들이 지나치게 높은 기업가치 때문에 상장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들도 이러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VC 투자가 가치투자가 되려면
비상장 회사의 가치를 숫자로 산출해내기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렇다면 그저 많은 수의 회사에 투자하고 한 두개 회사가 크게 성공하길 기도하는 Spray and pray 전략이 답일까요. 또는 기민하게 트렌트를 따라 사고 파는 Momentum 투자를 해야 할까요.
저는 여전히 VC 투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가치투자에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습니다.
1. 선구안
어떤 회사가 잘 될지를 골라내는 선구안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가지기 쉽지 않을 뿐이죠.
특정 산업의 방향성을 주류 투자자들의 Consensus 대로 읽어내는 것만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발굴해낸 회사에 이미 많은 투자자들이 다녀갔다면 조금은 실망스럽겠지만, 남들이 보는 만큼 나도 제대로 보고 있구나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투자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차별적인 관점을 갖기까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가 됐던 투자 판단이 틀릴 경우 VC에게 Stop loss란 없다는 위기 의식이 선구안을 기르기위한 동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 회사의 성장을 지원
기업의 가치는 회사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만 투자자라고 해서 물 떠놓고 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VC는 Buyout PE와 같이 공격적으로 회사 지분을 인수하여 직접 회사를 경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상장주식 투자와 비교하면 경영진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사업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VC가 회사의 본업을 대신해줄 수는 없어도 사업을 하며 겪는 여러 시행착오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가 될 수는 있습니다. 채용 또는 사업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주선한다던지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
VC 투자는 예측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회사의 가치를 만드는데 비교적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임은 분명합니다. 일련의 투자 과정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회사에 줄 수 있는 또다른 Value가 없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측이 안 된다면 더 공부하고, 그래도 예측이 안 된다면 직접 가치를 만들자.
뻔한 결론이 나왔습니다. 결국 제 머릿속에서는 업의 본질을 관통하는 투자 비법 같은 게 나오지는 않는 것 같네요. 다만 VC 심사역으로 내가 가진 Playbook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데서 작지만 깨달은 바가 있다 생각됩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VC 투자를 가치투자에 접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이곳에 공유해 나갈 생각입니다. 부족한 제게 귀중한 Insight를 주실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