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망한 회사 해방 일지
VC 심사역으로서 가장 말하기 어려운 주제인 포트폴리오 회사의 실제 실패 사례를 주제로 가져왔습니다. 투자 시점에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포인트들이 왜 좋은 결실을 맺지 못했는지, 이 투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공유하는 글입니다.
오늘은 포트폴리오사의 폐업에 관한 실제 경험담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투자한 모든 회사가 잘 되길 너무나도 바라지만 실제로는 꽤 많은 포트폴리오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청산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번 글의 대상이 된 회사(이하 "S사") 역시 저 어마무시한 폐업률을 이겨내지 못하고 청산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저의 반성문이기도 하면서 훗날 다시 읽으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글이기도 합니다.
투자 검토 단계에서부터 청산 절차까지 있었던 굵직한 이벤트들을 위주로 글을 써내려가 볼까 합니다.
💡 목차
1. 투자는 왜 했나요?
2. 투자 이후 경과
3. VC로서 무엇을 해줬나?
4. 투자를 마치며
투자는 왜 했나요?
투자 딜을 발굴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첫 째는 Top-Down 방식이고 두 번째는 Bottom-up 방식입니다.
Top-Down 방식은 말 그대로 위에서부터 훑으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법입니다. 어떤 산업에 투자할지를 먼저 고려하고 그 산업 내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회사를 찾는 것입니다. Bottom-Up 방식은 개별 기업 단에서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개별 기업을 검토한 후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하게 됩니다.
이렇듯이 두 가지 방법론이 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벤처투자에 있어서는 Top-Down 방식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벤처투자가 가진 공익적 성격을 고려하면 우리는 개별 기업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향후 성장 동력이 될 산업을 선정하여 그 산업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S사는 푸드테크 창업 팀입니다. 푸드테크 시장은 한국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2017년 2,110억 달러 규모에서 2023년 3,1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 기대되는 성장 산업입니다. 또한 국내의 푸드테크 창업팀들도 K-컬쳐의 눈부신 성장세에 힘입어 글로벌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한 시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푸드테크는 어쨌든 '식'에 관한 전통 산업이기 때문에 IT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개인화/제조 공정 자동화 등이 이슈가 되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산업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친환경 시대가 도래하면서 식품 업계에도 친환경 식품이 등장하며 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모로 매력적인 산업을 볼 만한 근거는 충분했고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에 대한 이와 같은 판단 하에서 1) 푸드테크 로봇 2)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식품 3) 친환경 식품 제조 등으로 하위 분류를 나눠봤습니다. S사는 이 중 2)에 해당하는 팀입니다. S사는 개인 맞춤형 친환경 간편식을 제공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투자 라운드를 돌면서 원했던 기업가치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이들의 목표가 100% 달성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기다릴 만하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많은 20~30대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이전 세대보다 커졌고 본인만의 무언가를 하고/먹고/가지고 싶어했기 때문에 개인화 마케팅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고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회사의 성장은 가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Exit을 생각했을 때 중대형 식품 브랜드사들이 '개인 맞춤형 간편식'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에 충분히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건 있었습니다. S사의 대표이사는 본인이 운영하던 프랜차이즈를 매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일정 부분의 리스크는 감당할 만하다고 판단했고 S사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투자 이후 경과
Seed 라운드 투자로 회사는 4억 원을 유치했습니다. 이 4억 원을 가지고 회사가 하겠다고 한 것은 오프라인 매장 개설이었습니다. 매장 오픈의 목적은 1) 마케팅 채널로의 활용 2) 제조 시설로 활용이었습니다.
S사는 기본적으로 식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거점 지역에서 노출도를 높이는 게 일정 부분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조의 경우는 OEM 공장을 찾기에는 초기 물량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컸으며 제조 시설을 카페에 두면서 추후 배송 거점으로까지 활용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했습니다. 거점 지역의 임대료가 워낙 비싸기도 했고 오프라인 매장이 입점한 곳은 '핫플레이스'와 물리적인 거리가 좀 있었기 때문에 화제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월세만 빠져나가면서 브랜드 마케팅 효과도 누리지 못하고 당연히 배송 거점으로의 활용도도 없다시피했습니다. 여기서 선택은 두 가지였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하지만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거래도 씨가 말랐고 S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갑자기 몰리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투자 포인트 중 하나는 회사가 창업한 이후 월간 기준으로 BEP를 꾸준히 맞춰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기존에 진행하던 온라인 사업으로 일단은 다시 사업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다면 위기를 한 차례는 넘길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는데 오프라인 매장 개설 이후 Cash Burning이 예상보다 크게 일어나면서 사업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온라인 사업도 오프라인 사업 확장을 위해 축소한 상태였고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정부 지원금 사업도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투자 집행 이후 얼마 되지 않아 S사는 급하게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VC로서 무엇을 해줬나?
저희는 S사에 초기 투자금 집행 이후 다양한 거래처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코스닥 상장사의 자회사에서 운영하는 식품 커머스 플랫폼에 입점을 주선하였고 국내 식품 대기업 관계자(개인)의 후속 투자도 이끌어냈습니다. 플랫폼 입점 이후에는 S사의 역량을 믿고 맡긴 측면이 컸습니다. '유명한 플랫폼에 들어갔으니 매출이 일정 부분은 나오겠구나'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S사의 대표이사는 회사를 매각한 경험은 있지만 재무적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FI로서 충분한 서포트를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를 마치며
이번 투자가 좋은 결론을 맺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의 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 전 후로 S사 대표님과는 일주일에 2~3번 통화하고 충분히 의사소통을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필요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습니다. 투자사로서 저희가 제공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회사가 진정으로 필요한 부분을 해결해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대표이사의 과거 경력에 기대 이번에도 똑같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과거 매각에 성공한 사례가 다수가 아니라 한 번의 성공 경험만 있다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한 번의 성공은 대표이사의 능력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시기도 다르고 인적 구성도 다른 환경이라면, 과거 성공 사례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번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제반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대기업과의 협업도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스타트업입니다. 정말 브랜드 가치가 높지 않은 이상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많은 지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MOU를 체결했든 뭘 했든 그것에 의존하기보다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아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 성장의 수혜를 모두가 받을 수 없습니다. 성장 산업의 초기 국면에서는 많은 기업들에 수혜가 전달되는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도 시장은 과점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시장 지위를 흔들 만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아무리 성장하는 산업에 속하더라도 그 과실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투자한 S사에 대한 투자를 왜 했는지와 그 투자가 왜 좋은 결론으로 끝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제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S사의 대표님을 생각하며 마음이 좋지도 않았지만 이번 투자로부터 얻은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서로 다른 이유로 생겨나고 문을 닫습니다. 이 경험을 다음 번 투자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투자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글이 해방일지 시리즈의 첫 편이자 마지막 편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자료
[단독]창업 지원 받은 스타트업, 10곳 중 7곳 사실상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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