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시장이 지금처럼 커질 수 있었던 이유 [VC 투자 단상]
전통 기관투자자들이 벤처 투자를 선택한 이유. 그리고 벤처 투자가 지금처럼 계속 확대되는 게 맞는가에 대한 짧은 고민.
벤처투자 시장의 성장
최근 들어 주춤하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벤처투자업계는 최근 10년간 고속 성장을해왔습니다. 창업투자회사는 2012년 105개에서 2022년 3분기 229개까지 늘어났습니다. 저 또한 2022년 2분기 창업투자회사 인가를 받아 활동 중이죠.
위의 표에 제시된 수치들은 창업투자회사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입니다. 창투사 이외의 Vehicle 또한 다양하다는 점에서 벤처투자 시장은 훨씬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벤처투자 시장의 플레이어로 참여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역시 벤처 시장으로 많이 진입하고 있습니다.
전통 기관투자자의 진입
위 표는 최근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삼기이브이의 IPO 이전 주주명부입니다.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PE), 에이스파인밸류신기술투자조합1호(신기술사업금융회사),마이퍼스트에셋자산운용(자산운용사), 대신증권(증권사), 엠제이투자자문(투자자문사) 등 창업투자회사가 아닌 회사들도 비상장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삼기이브이가 삼기라는 상장사로부터 물적분할된 특수한 구조임을 차치하더라도 최근 Dart에 올라온 증권신고서를 확인해 보면 많은 투자 기관들이 비상장 투자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 또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자산운용사 펀드를 통하여 여러 건의 비상장 벤처 투자를 하였으며, 점점 더 많은 운용사들이 비상장 시장으로 경쟁지를 넓혀온 것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죠.
그리고 최근 창업투자회사 심사역으로서 창업팀들을 미팅하다 보면 자산운용사/사모펀드 운용역들이 먼저 미팅을 한 곳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가장 최근 IR 미팅을 했던 곳은 Series A 단계의 극 초기 단계에 있던 팀이었는데 이미 자산운용사에서 일부 금액을 확약했다고 대표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하셨을 때는 놀랍기도 하면서 치열해진 경쟁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벤처 펀드의 안정적 수익률
그렇다면 기존에 벤처 시장 내 주요 플레이어가 아니었던 기관 투자자들조차 벤처 투자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 표는 '12~'21년 청산 펀드의 수익률 현황입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굉장히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벤처 투자를 잘 표현하는 'High-Risk, High-Return'라는 문구가 어색하게 2012년부터 항상 (+)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달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산운용사의 대표적인 상품인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어땠을까요? 일반 개인들이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 대용치로 코스피/코스닥 수익률을 살펴보았습니다.
코스피/코스닥의 경우 2020년처럼 수익률이 높았던 해도 있지만 2018년처럼 처참하게 무너진 해도 중간중간 존재합니다. 자산운용사와 같은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수익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이 이렇게 날뛰기 해서야 웬만한 투자 구루가 아닌 이상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것이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벤처 투자가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수익자 입장에서도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상품으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의 벤처 펀드 안에서는 정말 많은 회사들이 폐업을 하고 힘든 상황을 겪겠지만 외부인에게 드러나는 펀드 수익률은 이 모든 상황을 감추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은 분명 존재합니다.)
주식 펀드 대비 높은 운용 보수
여기에 더해, 기관투자자들도 하나의 법인으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해야 합니다. 자산운용사의 주요 매출원은 펀드 운용 보수입니다. 일반 주식형 펀드의 경우 대부분 1%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국내 대표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가치주포커스증권자투자신탁1호의 운용 보수는 0.73%라고 나오네요.
결국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를 운용해서는 대부분의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은 살아남기 힘든 태생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에 반해 벤처 투자의 경우 운용 보수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일반 주식형 펀드의 경우 운용 보수가 높다면 굳이 펀드에 가입 안 하고 개인적으로투자를 해버리면 그만이고 대체제도 정말 많이 나와있습니다. 다만 벤처 투자의 경우아직 일반 대중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딜 소싱부터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들이 상장 주식에 비해 많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운용 보수가 용인되는 상황입니다.
벤처투자 확대에 대한 근원적 물음
정리하면, 많은 기관투자자들 입장에서 벤처 투자는 수익률(+안정성) 측면에서나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나 매력적인 상품이었으며 이로 인해 벤처 투자 시장이 확장된 측면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기관투자자와 수익자 입장에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벤처 투자자는 수익률 이외에도 더 많은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창업 팀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이 창업팀에 자금을 공급하는 게 맞을까요? 특정 분야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일부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이런 다양한 근원적 물음에 확신이 있을 때 투자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우수한 수익률에도 정성적인 퀄리티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한 규모로 확장된 벤처 투자 시장에서 자본은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전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벤처 투자 시장이 이렇게까지 확대되는 것이 맞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