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블록체인 서비스가 없는 이유" Dapp은 태생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모델일까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많은 기대에 비해 실생활에서 체감되는 댑의 효용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대로된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나볼 수 있는 시기는 언제가 될까요? 블록체인 회사들을 투자
본 포스트는 디지털애셋의 멤버십 컨텐츠 디애셋프로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투자자로서 바라본 블록체인 회사들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14년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저는 뉴욕에서 공부 중이던 선배와 연락이 닿아 한달 동안 같은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온라인 음성 채팅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길 즐기고, 한물 간 게임의 희귀 아이템을 팔아 비싼 식당에서 데려가던, 조금은 Geek스러웠던 그 선배는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면 비트코인이 채굴되고 이것을 USB에 지갑처럼 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엉뚱하면서도 비범하게 느껴지던 그 개념은 이내 다른 잡담들과 함께 잊혀졌지만, 한동안 꽤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유난히 주식 시장이 좋았던 2020년, 잊고 있던 비트코인을 다시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와 리서치에 썼었는데, 당시 월스트리트에 꽤나 큰 반향을 일으켰던 린 알덴(Lyn Alden)의 리포트를 통해 비트코인이 투자 가능한 자산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여느 가상자산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쪽 세계에 꽤나 심취하게 되었고, VC에 합류한 이후엔 본격적으로 국내외 블록체인 회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회사 지분이 아닌 가상자산에는 투자하지 못하게 한 국내 창업투자회사의 법적 규제 때문에 기대보다 많은 투자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한 이유는 투자하고 싶은 회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인넷을 개발한다는 회사들은 고객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축해주는 서버 SI 회사처럼 느껴졌고,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는 이른바 댑(Dapp) 회사들은 자신들의 서비스가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돼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블록체인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의심을 던져보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서비스는 왜 블록체인을 써야합니까?
어느 순간 댑 개발사들은 기업 소개에 유행처럼 웹3(Web 3.0)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앞다퉈 말하는 웹3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블록체인 위에서 만들어진 서비스를 통칭하는 용어처럼 사용되는 웹3는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인터넷 발전 방향의 거대한 합의입니다. 사용자들이 서비스 참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고, 서비스 운영에 대한 거버넌스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웹3의 개념은 상당히 합리적이며, 실제로 인터넷 분야의 핵심 오피니언 리더들을 포함한 진취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웹3서비스는 “어떻게 참여자에게 합리적인 보상을 부여하고, 얼마나 공정한 절차로 이러한 보상 체계를 만들 수 있을지”라는 주제에 사뭇 심취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상을 둘러싼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 간의 이해 관계 조정과 신뢰 확보가 중요한 숙제인데, 이른바 신뢰 비용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탈중앙화 거버넌스의 구축입니다.
블록체인을 도입해 스마트계약으로 서비스 참여에 대한 보상을 보장하고, 거버넌스 토큰을 소유하고 있다면 많은 운영 현안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구조는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다만 블록체인만이 이런 미래를 만드는데 유일한 해법이라는 과격한 주장은 건설적인 논의를 진행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고객 자본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투명성과 합리성을 발전시켜온 주식회사의 전통적인 거버넌스 또한 웹3 철학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블록체인의 사용 유무는 투자자에게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합니다. 블록체인의 사용은 여지 없이 전제가 된 상황에서, 그럴듯한 사업 모델만 끼워 맞춘 서비스들은 프로덕트-마켓 핏(Product-market fit)과 지속가능성 어느 한쪽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술 주도형(Tech-driven)으로 자신감 있게 시작한 많은 회사들의 아쉬운 퇴장을 다양한 분야에서 목격해왔고, 이용자들을 서비스에 끌어올 수 있는 힘은 그저 경제적 보상과 같은 1차적인 유인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댑들이 성공했었을까요?
잠시 개발자로 일했던 2018년 당시, 운영진으로 활동한 개발자 학회에서 지금은 유명해진 블록체인 보안 회사의 대표님을 동문(Alumni)으로 알게 됐습니다. 이상하게 블록체인에 관심이 갔던 저는 대표님께 세미나를 요청드렸고, 감사하게도 시간을 내주신 덕에 기술과 산업에 대한 소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당시 가장 성공한 댑이던 ‘크립토 키티’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Dapp.com은 전세계 주요 네트워크별 댑의 랭킹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달 사이의 거래량을 기준으로 순위를 살펴보면 상위권에서 마켓플레이스와 파이낸스 외에 다른 카테고리의 서비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댑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디지털 자산을 거래하거나, 발행된 자산을 레버리지해 투자하는 것 외에 별다른 부가 가치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산업과 금융은 명확한 선후관계가 있습니다. 먼저 산업이 태동하고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운전자금을 비롯한 유동성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사후적으로 금융이 생겨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검증된 기반 산업 없이 탄생하여 (일시적으로나마) 가격을 형성한 가상자산들과, 이들을 담보로 설계된 복잡한 레버리지 상품들의 태생적인 한계를 말해줍니다. 많은 디지털 자산 발행사들이 사후적으로 유틸리티를 만들고자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모습이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결국 댑은 실패할수밖에 없을까요?
그동안의 성과와는 별개로 댑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산업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블록체인 인프라 개발에 이토록 많은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 킬러 앱이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마냥 저버리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① 프로토콜의 관점에서
프로토콜이 공개되고 다양한 운영주체가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퍼블릭) 블록체인이 갖는 중요한 장점입니다. 다른 앱 활동에 의해 블록체인 누적된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은 생각보다 놀라운 일입니다.
가령 전 세계 모든 유통 과정이 하나의 블록체인에 기록된다는 상상을 해보겠습니다. 기록된 데이터는 누구나 접근해서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정품 인증이나 물류 효율화 같은 개별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별도로 데이터 공급자와 계약을 맺거나 자체적으로 정보 수집을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동일한 블록체인 위에서 게임을 개발할 경우 개발사가 다르더라도 게임 간 디지털 자산, 아이템의 교환이 가능하겠다는 그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다소 이상적인 개념이나 서비스 운영 주체가 데이터를 소유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은 확장성 있는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유리한 특성이 됩니다.
② 탈중앙화의 관점에서
탈중앙화는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신뢰가 낮을 경우 특히 가치를 갖습니다. 반대로 고신용 사회일수록 서비스 주체를 믿고 기꺼이 거래의 완결을 위탁하여 비용과 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탈중앙화되어 있고 검열저항성이 높다는 블록체인의 특징은 신용 인프라가 발달하지 못한 사회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중앙화된 신원 관리 주체가 미비한 탓에 본인 인증을 위해 상당히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신용카드나 휴대폰을 이용해 쉽게 본인을 인증할 수 있는 선진국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ION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라는 장점을 활용해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탈중앙화 신원 인증 서비스입니다. 아직 뚜렷한 성과를 만들진 못한 것 같으나, 이런 형태의 신원 인증 네트워크가 확장된다면 특정 국가뿐 아니라 국가 간 신원을 인증하는 절차 자체가 간소화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2018년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블록체인은 효율성은 낮지만, 검열저항성이 높은 기술”이라 표현하며 탈중앙화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블록체인의 절대적인 효율성(성능)을 개선해 프로그램 서버로의 가치를 제고하려는 시도 또한 계속되어 왔습니다.
앞서 했던 많은 비판적인 이야기와는 별개로 블록체인 생태계에는 기대를 걸 만한 많은 혁신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당장은 탈중앙화라는 본질적인 특장점과 관련한 제한적인 서비스 영역에 기회가 있겠지만, 처리 속도가 개선됨에 따라 블록체인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사용처는 점차 많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계약을 활용한 결제 자동화나, 파일에 고유성을 부여하고 자산화하는 기능 또한 지금의 기대 이상으로 놀라운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대다수의 참여자들은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보다, 빠르고 편리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블록체인이 수요 없는 일반적인 공급에 그치지 않으려면 본질적인 필요 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환기가 필요합니다. 다음 크립토 불장은 펌핑과 투기가 아닌 유틸리티가 가격을 주도하는 건강한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디지털애셋 원문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