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의 2월 1일 포스팅 "추운 겨울, VC의 가치투자에 대해 생각하다"의 후속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후속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구루들의 투자법』이라는 책을 읽고 이 책에서 제시한 가치 투자의 기준을 바탕으로 VC 투자의 투자 방법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치 투자의 개념과 발전
“모든 좋은 투자는 가치 투자다” 라는 찰리 멍거의 명언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벤처 투자 역시 가치투자의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치 투자란 무엇일까요?
가치 투자의 창시자인 벤자민 그레이엄이 제시한 가치 투자는 안전 마진 확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투자 방법입니다. 기업의 내재가치에서 크게 할인된 가격으로 지분을 매수하는 것이죠. 여기서 내재가치는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보수적으로는 자산 중 유형자산만을 고려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현금성자산만을 활용하여 계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구한 순자산가치와 시가총액을 비교하여 그 차이가 큰 기업의 지분을 매수하는 것이 벤자민 그레이엄이 창시한 가치 투자입니다.
이러한 가치 투자의 개념은 워런 버핏에 의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됩니다. 워런 버핏은 벤자민 그레이엄의 가치 투자를 담배꽁초 투자라고 표현하며 한층 발전된(?) 가치투자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워런 버핏도 초기에는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의 방법에 맞춰 기업 투자를 하였고 성공을 거뒀습니다.
다만,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였고 더 이상 순자산가치에 비해 크게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종목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지자 새로운 가치 투자의 개념을 제시하게 됩니다. 워런 버핏이 제시한 가치 투자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그는 가치 투자를 적절한 기업의 주식을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이 아닌 훌륭한 기업의 주식을 적절한 가격에 매수하는 것으로 정의하였습니다. 그가 굴리는 운용 자산의 규모가 워낙 커져 스몰캡 종목들에 대한 투자가 제한되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용 가능한 매수 가격에 대한 범위를 넓히고 기업의 성장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치 투자의 본질이 기업 내부에 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가치투자의 개념을 정립했으니 이제 어떤 회사에 투자해야 가치 투자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이하 내용은 <구루들의 투자법>이라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1) 과거에 꾸준히 이익을 내왔는가? 2) 높은 이익률을 달성하였는가? 3)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영위하는 사업이 단순한가? 4) 누가 운영해도 지금과 같은 실적을 낼 수 있는가? 5)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사업인가? 이런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회사에 대한 투자는 가치 투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VC는 도대체 어떤 투자를 하는 건가요?
위에서 제시한 가치 투자에 대한 조건을 기준으로 VC의 투자가 가치 투자인지 아닌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VC가 하는 투자는 대부분 7년 미만의 창업 기업을 대상으로 합니다. 코스닥협회의 자료에 의하면 코스닥 상장 법인의 평균 연령이 약 22년이라고 하니 업력이 코스닥 상장법인 업력의 1/3도 안 되는 기업들에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1) 과거에 꾸준히 이익을 내왔는가? 라는 질문부터 막히게 됩니다. VC가 투자하는 기업들은 ‘과거’라는 게 없기 떄문입니다.
2)의 질문도 마찬가지이죠. VC의 투자는 과거 실적에 기반한 투자가 아니며, 미래지향적인 투자이기 때문에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기준에 비춰 볼 때 가치 투자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영위하는 사업이 단순한가? VC의 투자 대상이 되는 산업이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기준은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최근 VC 투자가 집중되었던 B2B SaaS의 경우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인건비 이외의 CAPEX 지출이 크게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조건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업 영역이 단순한가? 라는 질문에는 ‘?’가 붙습니다.
4) 누가 운영해도 지금과 같은 실적을 낼 수 있는가? 초기 창업기업이 VC로부터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경우는 대부분 창업자의 이력이 화려한 경우입니다. 즉, 대표이사의 커리어만 보고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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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유치뿐 아니라 마케팅, 인사 등 다양한 업무에서 경영자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물론 창업자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인물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장기적으로 회사를 한 명의 결정에 맡길 때의 리스크는 너무 클 것입니다. 창업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운영해도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의문이 들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가치 투자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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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사업인가? 이 질문은 명확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VC투자뿐 아니라 모든 투자가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VC의 투자는 과거 실적을 살필 수 없기 때문에 보다 더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죠.
상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벤처투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엔 가치 투자의 또 다른 조건인 ‘적절한 가격’을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년차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이 의미있게 나오고 흑자까지 나오며 어느 누가 경영하든 좋은 실적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벤처 기업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경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다 통과하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요? 가치 투자의 관점에서 VC 투자에 접근 한다면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몇 개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VC 투자는 상기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회사를 찾을 수 없으니 무엇 하나 부족하더라도 포트폴리오를 꾸려서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편입 회사 중 파산하는 기업이 있더라도 포트폴리오 차원에선 큰 문제가 없게끔 구성한 것이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겠으나 투자의 본질에 맞게 조금 더 '빡센' 기준을 적용하여 진짜 성공 가능성이 높은 회사들을 골라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또한, VC의 한정된 인력풀을 활용하여 소수 정예의 회사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게 VC의 본질에도 더 맞지 않을까요?
VC 투자의 또 다른 의미 - 미래에 대한 투자와 실패에 대한 관용
위에서 살펴봤듯이 VC 투자는 대부분의 경우 가치 투자의 영역으로 볼 수 없습니다. 세간의 인식을 보더라도 VC 투자는 전통적인 투자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VC 투자는 여전히 ‘대체투자’의 영역에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죠.
그렇다면 VC의 투자는 가치 투자가 아니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투자일까요? 출자자들의 돈으로 투자를 하는 VC로서 당연히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벤처 투자는 전통적인 투자와 달리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미래에 G5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의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가 적기에 이뤄져 이를 토대로 상용화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투자를 어떤 투자자가 앞장서서 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정말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VC 입장에서도 철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투자를 하지만 많은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망하는 걸 지켜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의 기업이 살아남아 우리나라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면 이 투자를 과연 합리성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VC의 투자 실패 사례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VC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데, VC 역시 출자자의 출자금으로 투자를 하는 투자사로서 올바른 투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위대한 기업으로 가는 여정의 출발점에서 기업의 조력자로서 투자 이외에도 다양한 도움을 제공하는 VC 투자는 일반 주식 투자와는 또 다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집행될 많은 VC 투자 건들에 대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잘 헤아려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