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회고록] 창업가로서 삶을 마무리 하며
창업부터 만 2년 이상을 함께한 스타트업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직업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소중한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짧은 회고록을 작성하였습니다.
마침내 스타트업에서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법인 설립부터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했기에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 2년 이상의 시간 동안 전력을 다했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느꼈던 점을 공유하기 위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금 블로그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동안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타트업 생활을 청산하느라 공사다망하여 저작 활동에 소홀했던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 생에 사업은 처음이라
회사를 운영하면서 느꼈던 모든 것을 전부 말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매일 새로운 일이 생겼고, 그 일을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튀어 나왔습니다. 누군가는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고 금세 새로운 얼굴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필자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몇 번 씩 천당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감정의 진폭이 -10~+10 이라고 한다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100~+100에서 오락가락 하는 듯 합니다. (물론 금방 무뎌지는 것을 보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2년 4개월 간 느낀점을 아래와 같이 요약해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어떻게 돈을 벌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즉, 사업가로서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고민입니다.
①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필자가 몸담았던 스타트업의 사업모델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우리의 주요 서비스는 고객의 가상자산을 유치하고, 이를 잘 운용하여 성과보수를 수취하는 것이었습니다. ‘트레이딩 사업’이라고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레이딩 사업의 KPI는 ‘운용 수익률’과 ‘AUM1' 입니다.
즉, 좋은 투자 전략으로 가상자산을 잘 굴려서 수익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고객의 자금을 모아 수수료의 규모를 키워나가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투자 전략이 있으면 빠르게 고객의 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금융기관 투자자의 가상자산에 대한 직접 투자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거액의 기관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기존 금융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따라서, 가상자산에 대한 직접 투자가 가능한 해외 금융기관 투자자로 목표를 선회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투자 전략의 운용 성과[Track Record]가 양호하더라도, 짧은 업력과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고객의 신뢰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유명한 기관으로부터 지분 투자를 유치하거나 정부 사업을 수주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문제는 트레이딩 사업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까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를 버티기 위한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트레이딩 사업만으로는 초기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우선 영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접 모객을 하는 것이 아닌 간접적으로 고객을 유치하는 것으로 경영 전략을 재정비 하였습니다. 또한 트레이딩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 전 까지 ‘깔고 가는’ 매출을 창출하기 위한 신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② 신사업은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는다
몇 가지 가상자산 관련 사업 아이템을 두고, 고민 끝에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 고객을 목표로 하는 B2C 플랫폼 사업을 기획하였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지 세부 사업모델은 영업 기밀이기 때문에 자세히 적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기존 인원 중 B2C 서비스에 대해 경험해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개인기로 서비스 기획서를 작성하였지만, 이를 구현할 개발자가 없었습니다. 당장 채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외주 개발로 눈을 돌렸습니다.
처음에는 주간 단위로 외주 개발 업체에 방문하면서 개발 진도를 점검했습니다. 하지만 소통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결과물의 퀄리티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게다가 처음 약속한 개발 기간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플랫폼의 오픈 일자도 지연되었습니다.
결국 웹사이트 간판만 세워두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일단 의도했던 기능은 작동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땜질을 하며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B2C 플랫폼을 개발할 수 있는 프론트엔드 개발자와 웹디자이너를 채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예상 밖으로 좋은 지원자들이 많았고, 덕분에 빠르게 채용 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외주 개발을 수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은 시간이 너무나도 뼈아팠습니다. 만약 애초에 외주 개발이 아니라 자체 개발을 선택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신사업이 성공할 확률은 꽤 높아 보였습니다. 플랫폼 오픈 후 몇 명의 활성 유저가 생겨 이들의 데이터를 분석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활성 유저 1인당 매출이 생각보다 높아, 세자릿 수 이상의 활성 유저만 확보할 수 있다면 전사 운영비를 커버할 수도 있을 수준이었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B2C 플랫폼 개발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렸을 지 상상해보곤 합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실수를 되새기고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요.
③ 사업만 잘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깨달은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일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본업과 무관한 일이 내 발목을 잡고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필자는 작년 개인 송사를 포함해 총 3건의 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소송을 거는 것도 당하는 것도 모두 큰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습니다. 왜 소송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하는지 깨닫기도 했고요. 특히 회사가 피소를 당한 건의 경우, 들어간 시간과 비용에 비해 결과가 좋지 못하다 보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데 며칠 걸린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준비 중인 사업을 잘 정착시키는 것 만으로도 벅찬데, 사업 외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많다 보니 제정신으로 일에 임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정신력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고 자평하였는데, 난생 처음 겪다 보니 스트레스 관리에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집필 방향
스타트업을 경영하면서 도전적인 상황과 자주 맞닥뜨렸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길러주었습니다. 첫 투자를 유치했을 때, 정부과제를 따 냈을 때 이제 뭔가 될 것 같은 그 고양감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쉬움과 성취감은 뒤로 하고 필자는 숙고 끝에 다시 금융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비상장주식과 메자닌 상품에 주로 투자하는 심사역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여러 고민거리를 남기고 스타트업을 떠났지만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도 이 소중한 경험은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비록 업이 바뀌었지만, 블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필자의 관심사는 ‘투자’ 그 자체 입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레버리지 삼아 이제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도움이 될만한 글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예전보다는 삶의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더욱 인사이트 있는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AUM: Asset Under Management, 관리 중인 총 자금 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