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투자하면 안된다는 심사역은 어떤 주식을 골랐을까
저희가 요즘 현생에 치여 살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매우 많지 않겠습니까.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려 하는 변명은 아닙니다.
저는 요즘 가을을 탑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반성과 현타의 시간이죠. 슬슬 한 해가 끝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한해 동안 열심히 쫓아왔던 목표에 얼마나 다가왔는지, 확신했던 것들이 굴곡을 맞이하며 얼마나 너덜너덜한 상태가 됐는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오늘은 열심히 돈을 벌려고 달려왔던 투자자로서 어떤 생각 변화가 있었는지 이야기 해보면서, 최근 DS2M 펀드에 편입한 종목에 대한 소개까지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에서 돈이 제일 중요하세요?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돈 진짜 중요하죠... 중요한데요. 원래도 이렇게 사람들이 돈 얘길 많이 했었나요?
나이가 별로 많지 않은 제 기억에도 예전엔 돈 이야기를 대놓고 하면 속물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모두가 너도나도 적극적으로 자기가 돈 번 이야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온통 돈 얘길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금융권으로 들어오기 전 삼성전자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반도체가 아닌 부동산, 주식, 코인에 대해 그렇게 모두와 열띤 토론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본인 삶에 책임을 갖고 살려는 건강한 태도를 갖췄다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굳이 쉬쉬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기도 하고, 인생의 중요한 가치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죠. 다만 언젠가 제 머릿속 많은 생각의 중심이 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스스로가 썩 만족스럽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거북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느 순간 저는 멋진 가게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도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이 가게를 차리려면 얼마나 들지, BEP를 달성하려면 하루에 얼마를 팔아야되고, 투자 비용을 회수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등등... 옆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의 보내는 소중한 시간, 가게 주인이 손님들에게 주려고 노력했던 경험에 집중하는데도 부족했을 기회를 허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멋이 없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돈을 쫓지 않는 투자라는 아이러니
심사역으로 투자를 하다보면 자본 차익이 목표 그 자체가 돼버리는 많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사업성은 절대 나올 거 같지 않은 회사가 미스터 마켓의 간택을 받아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를 몇 번 보다보면, 투자할 때마다 좋은 사업인지를 열심히 고민하는 스스로가 바보 같다 느껴질 때도 있죠.
우리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좋은 사업을 가지고 있는지를 철저히 검증하지만, 또 어떤 때는 개뿔 실적도 없는데 시장에서 주목할만한 재료를 가졌는지를 더 자세히 뜯어봐야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유통 물량이 적어 특정 매수 주체에 대한 반응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지(시쳇말로 세력이 붙어 가격이 오르기 쉬운 주식일지) 마저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놓이기도 하죠.
자본 차익을 쫓다보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물론 이것이 수익을 거둬줄 확률이 높다면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웬만큼 안전마진을 갖고 시작하지 않는한 이런 베팅은 외생변수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요즘은 특히 실적이 없는 특례 상장 주식의 경우 Equity Story를 아무리 멋지게 짜더라도 거래소가 요구한 보호예수 기간 안에 제 값어치로 돌아오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돈이 아니라 사업을 쫓자"
그래서 저는 돈 되는 테마와 이벤트가 아니라 사업에 투자해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직원들의 월급을 줄 수 있는 (또는 그럴 계획이 있는) 회사여야겠습니다. 고객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며 사업적인 입지를 다지고, 외생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적당한 협상력을 가져갈 수 있는 회사면 최고죠. 아직 제 능력으로 시장의 테마와 이벤트를 정확히 예측할 순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좋은 사업이 돈을 벌어준다는 상식에 의지해보려 합니다.
누가 어떻게 사모펀드 매니저가 되는가 [김태엽의 PEF썰전]
👆사모펀드의 영역에서 일을 한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는 글입니다. (다른 글도 다 너무 재밌습니다!)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얘기는 사모펀드 매니저로서 "18~25%의 이익을 낼 수 있는 회사를 꾸준히 발굴하려 노력한다", "돈을 모으는 게 제일 어렵다" 였네요.
좋은 사업을 알아보는 기준
저희 펀드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제게 할당된 Book으로는 3개 정도의 종목에 투자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대망의 종목 1개의 편입을 마쳤는데요. 진짜 특별할 거 없이 매우매우 상식적이게도 꾸준히 좋은 사업을 해왔던 회사를 골라 투자를 했습니다.
👇저희 펀드 런칭에 대해 모르셨던 분들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믿고 맡긴다 친구(회사)야."
이번 투자의 테마입니다. 왜 학창시절 그런 친구 있지 한 명씩 않았나요? 성실해서 공부도 잘 하고, 조용한데 은근 어디 나가서 상도 잘 받아오고, 근데 또 착해서 친구들한테 뭔가 자꾸 나눠주는... 그런 애들이 있죠 (너무 추억 미화인가요). 이런 친구는 딱 봐도 나중에 크게 될 거 같고, 뭘 하겠다고 하던 걱정이 잘 안됩니다.
회사에 투자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따박따박 돈 벌어오고, 안주하지 않고 신규 사업도 벌이고, 투자해준 주주들에게 감사를 잊지 않고 매 분기 뭘 했는지 IR도 열심히 하는... 그런 회사들이 은근 많이 있습니다. (완전 많진 않고 생각보다는 많은 거 같습니다.) 이 회사들은 매번 분기 실적을 모니터링하며 사고 팔 필요도, 시장에 큰 충격이 있을 때 주식을 내던질 필요도 적겠지요.
좋은 사업을 빠르게 스크리닝 하는 방법으로는 ROE, PBR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상장, 스타트업에 투자하시는 분들은 ROE, PBR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요. 저도 이번 기회에 아주 기본적인 이 개념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ROE, PBR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법
(이미 잘 알고 계신 분들은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1) 친구에게 1천만원을 꿔줬다(투자했다) 칩시다.
알고 지낸지 오래된 이 친구는 사실 사업의 귀재로 밝혀져 1년만에 5백만원이라는 큰 돈을 벌어왔습니다. 이럴 때 투자자는 동네방네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I knew it!". 아무튼 자본(Equity) 1천만원으로 500만원을 벌어왔으니 ROE(Return on Equity, 자본 대비 수익률)은 50%겠네요.
2) 이제 친구 회사에는 1,500만원이라는 자본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대담한 이 친구는 1,500만원을 전부 재투자했고 또다시 1년만에 750만원을 벌어왔습니다. 작년보다 1.5배나 돈을 더 벌어온 셈인데, 수익을 내 자본이 많아진 회사가 이전과 같은 ROE(%)를 유지한다는 건 이렇게 생각해보니 대단한 겁니다.
3) 이제 회사의 자본은 2,250만원이 되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내가 급전이 필요해 회사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되게 생겼습니다. 가진 건 2,250만원이지만 매년 50%의 ROE를 내는 사업 천재를 보유한 엄청난 이 회사를 과연 2,250만원에 팔아버릴 바보가 있을까요? 아무리 적어도 4,500만원은 받아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쉽게 매수자를 찾아 4,500만원에 회사를 넘기게 됐습니다. 자본이 2,250만원인 회사를 자본 대비 2배의 값을 받고 팔았는데 이게 바로 PBR의 개념입니다. 이 회사의 PBR(Price Book Ratio, 자본 대비 시가총액 비율)은 2배 인거죠.
4) 비싸게 산 매수자는 손해를 보는 걸까?
매수자는 PBR 2배의 값을 지불하고 ROE가 50%인 회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본에 비해 2배나 비싼 돈을 줬지만 매년 이 회사가 벌어들일 수익은 50%/2배=25% 입니다. 이 돈을 은행에 넣어뒀으면 4%를 받을까말까 했겠지만, 이제 이 매수자는 25%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게 된 겁니다!
ROE(%)/PBR(배)은 회사를 구입했을 때 구입가를 감안해 매년 얻게 될 (사업) 수익률입니다. 그런데 사실 ROE/PBR은 PER의 역수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니 PER의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와닿지 않나요. (왜 투자 구루들이 PER, PER 노래를 부르는지 알겠습니다.) 자본이라 번역되는 Equity가 사실은 우리가 사고파는 주식(Equity)이라는 사실도 은근히 놓치기 쉬운 개념입니다.
그래서 좋은 사업 찾아왔어? (매수 매도 추천 아님)
"가치투자? 요즘엔 로보트지!"
이번 투자는 ROE를 높게 낼 수 있는 회사를 적정한 PBR에 살 수 있다면 아주 좋은 딜이라는 상식적인 개념이 실전 투자에 통할지를 검증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상식적인 투자라는 건 증명되기 전까진 주변 사람들에게 천대 받기 일쑤인데요. 얼마 전 주변의 지인이 술자리에서 가치투자 얘기를 했다가 "가치투자? 요즘엔 로보트지!"라는 구박을 받았다는 비화를 듣는데 웃기면서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자 저희가 투자한 회사는 바로바로 반도체 장비에 붙어 있는 Scrubber와 Chiller를 공급하는 한국의 G사입니다. Scrubber는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에서 나오는 유독 가스를 정제하는 공기 청정기 같은 거라 보면 되구요. Chiller는 반도체 장비 내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해주는 장비입니다. 제가 나름 짧은 기간이나마 삼성전자 반도체 설비연구소에서 일하며 접할 수 있었던 제품이네요. (자세히는 모르고 뭔지 아는 정도지만 제 Core of competency의 영역에 있다고 주장하려 합니다.)
시가총액이 2천억쯤 되는 이 회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은 퐁당퐁당한 감이 없지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반도체가 호황 때의 실적이 가장 좋았고 올해는 업황을 따라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다만 주식 가격은 미래를 반영하기 때문에 실적 감소 악재가 충분히 반영된 가격이라면 사볼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가장 실적이 좋았던 2021-2022 이전인 2018-2020년을 기준으로 보수적인 수익력 예측을 해볼 때 15% 정도의 ROE를 낼 수 있는 회사란 걸 알 수 있습니다. 2023-06 재무 기준 최근 회사의 PBR이 1이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괜찮은 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재미는 없어도 Long-term Greedy하게
ROE, PBR만 보고 투자하기엔 시장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부채를 많이 내서 ROE에 착시가 있지는 않을지, 일시적인 호황이 있진 않았는지, 앞으로의 성장 동력이 마련되어 있는지 등 고려할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은 수익력을 갖춘 좋은 사업인지, 그 사업이 적절한 가격에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지 였습니다.
특별한 테마도 없고 전방 시장도 반도체 산업으로 뻔한 어찌보면 재미 없는 주식입니다. 하지만 사업을 잘 하는 믿을만한 이 친구는 1년에 10%씩 20%씩 제가 투자한 자본을 성실히 불려갈겁니다 (제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요). 저만큼 벌어서 언제 돈을 벌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10~20%의 이익이 계속해서 재투자된다는 건 아주 Bullish한 생각이어서 너무 공격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고민될 지경입니다. (우리는 이걸 Long-term greedy 하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과연 이 친구는 제가 보낸 신뢰에 부응해 분기 실적을 일일히 챙기지 않아도 되는 맘 편한 투자처가 될 수 있을까요?
저희 펀드는 어려운 시장 속에서 준수한(?) 성과를 내며 고군분투 하고 있는 중인데요. 다음에는 이번 투자와 조금 다른 컨셉으로 성장성 있는 Quality 주식을 찾아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