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열풍은 거품일까?" 쉽게 볼 수 없는 데이터만 모아봤습니다
요즘 위스키에 관심이 높아진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위스키, 더 나아가 국내 고급 주류 산업에 대해 톺아보았습니다.
최근 위스키(Whisky/Whiskey)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부쩍 높아졌다는 내용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특정 품목 위스키는 소위 '오픈 런'을 야기할 정도로 품귀 사태를 빚을 정도였다고 하니 위스키를 향한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해외여행객 출국 현황]
(단위: 백만명)
위스키 대유행을 설명하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판데믹 이후 감소한 해외여행 수요가 명품, 고급 주류 등 사치품으로 흡수된 점이 한몫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23년 3월까지 해외여행객 수는 약 5백만명으로, 연환산 시 약 2천만명이 예상됩니다. 이는 2015년 연간 해외여행객 수에 불과한 수준으로, 해외 여행과 고급 주류는 사치재로서 대체 관계가 있다는 설명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국내 고급 주류 시장에서 위스키 대유행이 일어날만큼 유의미한 소비 문화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변화가 일어났다면 앞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데이터를 통해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국내 고급 주류 수입 동향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나라셀라와 국내 위스키 수입업체 사례
Road to K-whisky
맺음말
국내 고급 주류 수입 동향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고급 주류의 종류를 위스키, 와인, 사케(일본식 청주)로 한정했고, 최근 10년 이상 소비 트렌드를 확인하기 위해 2010년 이후 데이터를 취합했습니다.
[위스키 수입금액 추이]
(단위: 백만달러)
위스키의 경우 2020년까지 수입금액이 하락 추세였으나, 2021년, 2022년 각각 전년 대비 32.4%, 52.2% 급증하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단가가 저렴한 기타 위스키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여 전체 수입금액 중 약 30% 가량 차지하고 있습니다.
[와인 수입금액 추이]
(단위: 백만달러)
와인 수입금액은 2010년 이후 역성장 없이 꾸준히 증가하였습니다. 2021년에는 전년 대비 67.6%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022년에는 한 자리수 대로 하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입금액은 5.8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습니다.
[사케 수입금액 추이]
(단위: 백만달러)
사케는 위스키와 와인의 수입금액에 비해 미미한 수준입니다. 판데믹 이후 수입금액이 30% 이상 늘어났지만, 예년 수준을 회복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절대금액으로 볼 경우, 위스키의 1/10, 와인의 1/30이 채 되지 않습니다.
[국내 고급 주류 수입금액 전년 동월 대비 비교]
(단위: 백만달러)
최근에는 어땠을까요? 2023년 4월 누계 수입금액 기준으로 위스키와 사케는 각각 17.5%, 29.2% YoY 증가했지만, 와인은 6.3% YoY 감소하였습니다. 증가율은 사케가 가장 높았지만, 금액은 위스키가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단, 여전히 국내 고급 주류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은 와인으로 확인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고급 주류는 숙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보유할 수록 숙성 기간이 늘어나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산 보존의 수단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사케를 제외한 고급 주류 단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위스키는 2010년 대비 56.4% , 와인은 79.3% 상승해, 동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8.3%)을 가뿐히 상회했습니다.
[국내 고급 주류 단가 추이]
(달러/리터)
국내 수입 단가(P)는 계속 상승했는데 1인당 소비량(Q)은 어땠을까요? 국세통계포탈에서 제공하는 주류 출고 현황 데이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1인당 연간 알콜 소비량은 2010년 약 8.9리터에서 2021년 약 7.3리터까지 완만하게 감소했습니다.
[국내 1인당 알콜 소비량 추이]
(리터)
위스키는 2020년까지 1인당 소비량이 꾸준히 감소하다 2021년 소폭 증가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와인에 비해 1/3 수준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물론 위스키의 도수가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감안할 필요성은 있겠습니다.) 현재 2022년 소득세 신고가 마무리 되지 않아 자료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2022년 1인당 위스키 소비량도 증가 추세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론적으로 주종에 따른 차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1인당 알콜 소비량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의할 점은 현재 고급 주류의 높아진 가격이 판데믹 이후 급격히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일시적 상승 효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에서 제공하는 와인 가격 지수를 살펴보면, 2022년 하반기 정점 달성 후 완연한 하락 추세에 접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 와인 가격 지수]
한편, 위스키 등급, 리테일·경매 가격 등을 제공하는 플랫폼 위스키스탯(Whiskystats)에서는 500종의 위스키 가격을 가중 평균하여 매월 지수를 산출하고 있습니다. 해당 지수의 경우에도 2023년 3월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어 만약 투자 자산으로 와인이나 위스키를 고려한다면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위스키스탯(Whiskystas) 위스키 가격 지수]
💭 원본 데이터를 봐야 하는 이유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공식은 지식=성경X논리였다. …(중략)…과학혁명은 지식에 대한 사뭇 다른 공식을 제안했다. 그것은 지식=경험적 데이터X수학이다.…(후략)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가 밝혔듯, 현대 사회의 지식은 사고의 틀(수학)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해석함으로써 축적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가공된 데이터는 데이터를 가공한 사람의 주장(또는 편견)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데이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창의적인 결론을 도출해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다소 번거롭더라도 데이터의 원 출처를 확인함으로써, 데이터를 활용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누락하였거나 잘못 해석한 부분은 없는지 항상 검증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라셀라와 국내 위스키 수입업체 사례
최근 와인 도소매 유통업체인 나라셀라가 상장을 위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최초 공모 과정에서 유사회사 그룹에 LVMH(Ticker: MC FP)를 포함하여 논란이 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유사회사 그룹에 제외되었습니다.
[나라셀라 수요예측 결과]
수요예측 결과 희망 공모가 밴드 하단(20,000원)으로 최종 공모가가 결정되었습니다. 국내 와인 수입금액의 성장률 둔화와 고급 주류 시장의 모멘텀 상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판단됩니다.
나라셀라의 우울한 수요예측 결과와는 별개로 국내 위스키 수입업체의 실적은 양호한 추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렌타인·로얄 살루트 등을 수입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는 2021년, 2022년 각 30% 이상의 매출액 신장을 기록했으며, 동 기간 영업이익률은 20%를 상회했습니다.
[페르노리카코리아 실적 추이]
(단위: 십억원)
조니워커·라가불린 등을 수입하는 디아지오코리아는 사업 부문 매각 이슈로 인해 다소 실적이 저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동사는 '위스키 사업 부문'을 제외한 다른 주류 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하여 매각 추진중에 있으며, 위스키 사업 부문의 경우 30% 이상의 높은 영업이익율을 기록했습니다.
[윈저글로벌(디아지오코리아) 실적 추이]
(단위: 십억원)
국내 수입 위스키 가격이 높은 이유에 대해 수입 주류에 대한 비우호적인 세금 체계(관세 20%, 주세 72%, 교육세 30%, 부가가치세 10% 등)가 자주 거론됩니다. 다만, 실제 위스키 수입업체의 재무제표를 살펴본 결과 원가에 막대한 세금을 녹여내고도 높은 마진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광고선전비 및 판매촉진비와 막대한 해외 본사 지급 배당금 감안 시, 국내에서 판매되는 위스키의 과도한 가격이 비단 세금 구조에서만 비롯된 것뿐이라고는 할 수 없어 보입니다.
[매출액 대비 광고/판촉비 및 배당금 지급 합산 비중 추이]
Road to K-whisky
일본의 야마자키(山崎), 산토리(サントリー), 대만의 카발란(Kavalan)의 성공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를 주조하려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김창수위스키증류소의 '김창수 위스키'와, 쓰리소사이어티즈의 '기원'이 그 대표 주자입니다.
다만 국내 생산이어도 주종이 증류주 중 하나인 '위스키'인 만큼 일률적으로 출고가 대비 72%의 '종가세'가 매겨집니다. '김창수 위스키'나 '기원'은 출시 즉시 완판될 만큼 인기가 높지만 앞서 언급한 세금 구조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한편에서는 보리가 아닌 다른 원료(쌀 등)를 이용한 그레인(Grain) 위스키 상품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증류원액으로 증류식 소주를 사용할 경우 '전통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세금 감면과 온라인 판매 등 여러 혜택이 존재합니다.
현행 주세법상 과도한 세금 구조로 인해 '위스키'의 국내 생산이 어렵다면, '전통주의 탈을 쓴(?)' 위스키부터 시작하여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만약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식 그레인 위스키'라는 새로운 주류 카테고리가 형성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맺음말
개인의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을 수 있고, 이를 향유할 토대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에는 여전히 천편일률적인 주세 적용 방식 등 독자적인 주류 문화가 자생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도 여건을 탓하기 전, 우선 소비자부터 그때 그때 유행만 좇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주류 문화가 무엇인지 고민해 봅시다. 수요가 충분하다면 공급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