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자본 시장의 첫 커리어를 리서치센터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IPO 부서로 옮겨 기업공개와 Pre-IPO 투자 업무를 수행했는데, 유통 시장과 발행 시장 모두 겪어보면서 투자 스타일은 자연스럽게 변화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에는 기본적 분석에 기반한 ‘가치투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가격과 수급을 중심으로 보는 ‘차티스트’에 가까운 입장으로 변했습니다. 사실 어느 방식이 우월한지 논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투자자마다 알맞은 옷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을 두루 시도해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한테 어울리는 전략이나 투자 철학을 정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는 확률적 우위에 기대어
시간의 횡포를 견디는 것이다."
필자가 애정하는 투자에 관련된 잠언의 한 구절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기술적 분석에 기반한 "차티스트"의 매매를 선호합니다.
기술적 분석의 장점은 투자 전략의 계량화가 쉽다는 것이고, 계량화가 쉽다는 것은 확률적 우위를 검증하기 위한 백테스팅이 용이하다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소위 ‘퀀트 투자’라고 불리는 스타일이 필자에게 맞는 스타일이었고, 한참 몰두할 때에는 백테스팅을 하느라 날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특히 펀더멘탈의 개념이 모호한 암호화폐 시장에서 계량적 분석을 활용한 전략이 잘 작동했기 때문에, 필자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암호화폐 트레이딩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창업자의 길
2020년 하반기부터 IPO 시장은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웬만한 공모주들은 ‘따상(시초가 2배 상승후 상한가, 즉 공모가 대비 160% 상승)’을 기록했는데, 공모가 대비 시초가 상승률은 평균적으로 80% 이상에 달했습니다.
발행사들은 가장 비싼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을 때 기업공개를 추진합니다. 늘어나는 공모 건수와 규모는 시장이 과열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는 방증이었습니다. 이 ‘미친’ 시장의 끝은 거품 붕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였습니다.
과거 필자가 리서치센터에서 IPO 부서로 이직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내가 있는 곳 보다 '앞단'의 시장으로 옮겨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선택지는 1)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VC(혹은 AC) 업계로 이직, 혹은 2) 직접 창업으로 좁혀졌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암호화폐 트레이딩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로 합류할 것을 제안 받았고, 주저 없이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사실 스타트업에 대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도전 해볼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필자는 인생을 트레이딩에 즐겨 비유하곤 하는데, '트레이딩의 정수'는 대단한 투자 전략이 아니라 고루한 위험 관리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한 번의 트레이딩이 전체 포트폴리오에 미칠 ‘One trade risk’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술하자면 '2% rule' 즉, 한 단위의 트레이딩이 전체 포트폴리오에 2%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전략을 설계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적용해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인생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스타트업에 몸담기로 결심했을 때, 최악의 경우 적어도 2년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날리는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대강) 100년의 인생 중 2년의 기간이면 ‘2% rule’에도 부합하니, 충분히 감내할만한 리스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을 건 배팅-건곤일척-을 노리는 것도 멋진 결정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감당 가능한 리스크의 한도를 미리 설정해보고자 했습니다.
벌써 스타트업을 설립한지 9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LUNA 위기, FTX 파산 사태 등 산업의 존폐를 위협할만한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대내적으로도 공동창업자의 이탈과 합류, 그리고 중대한 사업 방향성 수정(Pivot) 등 내홍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초기 기업으로서 나름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합니다.
설립 이후 총 3개의 기관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성공적인 위탁운용 트랙 레코드를 확보했으며, 트레이딩 솔루션에 대한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여전히 암호화폐 시장의 성공 가능성에 높은 (심리적) 확률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향후 칼럼의 방향성
필자는 앞으로 발행사의 관점에서 다양한 주제로 생각을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주로 ① 전반적인 스타트업 경영에 관한 내용과 ② 현재 영위하고 있는 비즈니스에 대해 소개할 기회가 많을 것입니다. 현재 회사에서 경영·재무 전략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초보 경영자로서 좌충우돌 해 나가며 성공과 실패를 맛 봤던 경험에 대해 다뤄 볼 것 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 시장 사이클(회사 설립 → 투자 유치 → 기업 공개 → 유통 및 매매)의 주요 지점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동시에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